Old Music Story

[김장훈] - 슬픈선물.1999

stamen 2021. 6. 17. 13:17

 

다 끝난 일 인거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니

 

널 잃고 살아가야 하는 걸 나를 포기한다는 건데

 

잘 지내길 바란다는 그 말 왜 내게 한 거야

 

어떻게 너 없는 동안 내가 편히 지낼 수 있겠니

 

아직 다 못한 말이 천마디도 넘지만

 

이젠 다시 이젠 두 번 다신 생각하진 않을게

 

다시 시작할 너에게 혹시 내가 짐이 된다면

 

모두다 지워버리면되 어렴풋한 기억하나 남아있지 않도록

 

훗날 내 곁에 누군가 우리 사일 궁금해하면

 

이젠 다 잊었단 말대신 처음부터 정말 나는

 

너를 모른다고 말 해줄께

 

자꾸만 눈물이 나 힘들기도 하지만

 

이젠 다신 이제 두 번 다신 생각하진 않을게

 

다시 시작할 너에게 혹시 내가 짐이 된다면

 

모두다 지워버리면 되

 

어렴풋한 너의 기억 하나 남아있지 않도록

 

훗날 내곁에 누군가 우리 사일 궁금해하면

 

이젠 다 잊었단 말대신 처음부터 정말 나는

 

너를 모른다고 말 해줄께

 

처음부터 우린 모르는 사이인거야

 

https://youtu.be/e8-1k5h7gAo

 

말 그대로 김장훈의 최전성기 시절에 발표했던 그의 올타임 넘버원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곡.

 

심금을 울리는 노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들이 출연하며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한 그 곡.

 

 

내게는 깊은 슬픔과 눈물 그리고 눈물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

 

군에 입대하고 불과 4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초겨울의 삭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즈음, 당시 여자친구가 면회를 왔다.

 

중앙에 연탄 난로가 놓여져 있던 부대 입구의 면회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총 3팀이 있었는데, 두팀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들과 여자친구들 이었고, 나만이 이등병이었다.

 

쇼파에 몸을 깊이 파뭍고 사랑을 속삭이던 그들과 달리, 나는 몸을 꼳꼳히 세운체로 앉아 있었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녀가 사왔던 음식에는 손을 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밝은 얼굴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묻고 실없는 얘기로 그녀가 나를 찾아왔던 이유를 말하는 것을 막아보려 했지만..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해 말없이 줄 담배만 피워댈 뿐이었다.

 

긴 시간을 서로 말없이 앉아만 있던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기억나지 않는 음식은 차갑게 식어 말라붙어 갔고,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고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의 이별 통보를 듣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그 순간, 면회실의 스피커에서 한숨 가득한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 정말 거짓말같은 타이밍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를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단 몇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만에 다른 남자에게 떠나갈만큼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었지 않나 하는 자기혐오, 그리고 90년대 당시에 3천만원의 고가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던 나보다 겨우 2살이 많았던 군대를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남자만큼 부유하지 못했던 내 형편..

 

그 비참함과 억울함에 쏟아지는 눈물을 가리려 깊게 전투모를 눌러 쓴 고개를 숙였지만, 허벅지위로 떨어지던 눈물방울들이 바지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고...

 

위병소를 통해 그녀를 보내주고 돌아서서 복귀를 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긴 소나무 산책로 곳곳에 매달려 있던 스피커에서도 이 곡이 울려펴지고 있었고...

 

20년도 넘은 지금도 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위병소에서 부대 앞까지 이어진 초겨울의 텅빈 소나무 산책로를 걷던 초라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

 

애인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고 돌아온 그 날 저녁, 내게 돌아온 것은 평소와 다름 없던 욕설과 구타 였고, 새벽녘에 구타와 더불어 소위 말하는 원산폭격으로 얼차려를 받던 나는 이성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 대기 보다는, 이따위 시궁창같은 더러운 군대의 현실따위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 주겠다며 핏발선 눈으로 악에 받쳐 이를 꽉 깨무는 것을 택했던 기억이 난다.